1️⃣ 5th Technology의 실체 : 부드러움의 이면
2011년, 파카는 '만년필 같은 우아함. 수성펜의 편리함'을 조합한 5th technology를 발표하며 Ingenuity 라인을 출시했습니다. 메탈 후드 아래에 숨은 섬유 팁은 종이에 닿는 느낌이 일반 수성펜보다 월등하게 부드러웠으며, 빠른 건조시간, 사용자의 필각에 맞추어 펠트 닙이 빠르게 맞춰(마모)진다는 장점은 다른 필기구와 구별되는 Ingenuity 만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결과와는 다르게, 지금 우리들의 머릿 속에는 Ingenuity는 한 때 잠깐 번쩍였던 무언가. 궁금하긴 하지만 차마 구매하진 못할 예쁜 쓰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의 게시글은 바로 이 Parker Ingenuity가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는지에 대한 분석과. 실제 사용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첨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Pen Addict 유저 Brad Dowdy의 평가로부터 포스팅 시작합니다.
There's just not enough friction to control it well, and the line variation isn't intentional-it's unpredictable
필기를 제어하기엔 마찰이 부족하고, 선의 굵기 변화는 의도된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다.
2️⃣ 분석 1 : 폐쇄형 리필 시스탬 : 붕괴되고 단종된 생태계
Ingenuity는 parker 5th 전용 리필심만 사용할 수 있으며 범용 규격인 G2와 호환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Ingenuity의 소구점이었던 "지금까지의 필기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필기 방식"을 강조하기 위해서 단일 모델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방식에 제한을 두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Ingenuity가 꾸준하게 판매되었다면, Ingenuity의 규격이 새로운 기준으로, 그들이 원하던 '패러다임 시프트'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2020년대에 제품 라인과 리필이 모두 단종되었고, 현재까지도 리필 수량이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구매를 해야하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The Parker Ingenuity line is now discontinued and the 5th refills are only available for purchase in limited stock.
Parker Ingenuity 라인은 현재 단종됐으며, 5th 리필은 소량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PenVibe-
So this is just a fancy looking tube now? I can't find refills anywhere.
이제 이건 그냥 멋진 금속 튜브일 뿐인가요? 리필은 어디서도 못 찾겠어요
-Reddit-
3️⃣ 분석 2 : 높았던 가격과 짧은 수명
네이버 쇼핑을 기준으로 리필 하나는 약 13,000원 정도이며, 리필 스펙(사용 거리)는 대략 500m로 모나미 유성 볼펜 (600m) 과 비교하면 다소 짧은 편에 속합니다.
수성펜은 유성 잉크에 비해 점도가 묽어 종이에 묻는 것이 아니라 흘러나오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용 거리가 짧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저의 필기량으로 3주 정도면 잉크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5th 리필심의 특징 중 하나인 '사용자의 필각에 맞추어 변형'되는 구조는 펜 자체의 무게가 30g~40g 정도이기 때문에 펜촉에 무게를 받아 더 빠르게 마모되는, 펠트촉의 수명을 빠르게 단축시키는 원인이자 유용하지 않은 특징이 되어버렸습니다.
리필심은 월 평균 2-3회 정도 교체를 해야하지만 유지보수의 차원에서 최대 월 4만 원은 크나큰 부담이자. 오로지 필기감만을 위해 지속 투자되어야 하기에는 그저 수성펜에 불과했습니다.
4️⃣ 분석 3 : '장식품'으로 전락한 제품
앞선 분석 1과 2만으로 보았을 때, 5th Ingenuity의 가장 큰 패착은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할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Parker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만을 내세워, 막연한 충성심이 꾸준한 판매량에 기여할 것이라는 잘못된 전략이 이 제품을 10년만에 단종 절차로 이끌었습니다.
필자는 이 펜을 갖고 있자니 사용할 일이 없고 -사용할 수 없으면 장식품에 불과하고, 장식품은 가치가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판매하자니 리필 구매처가 한정적인 관계로 구매 가격의 1/3 수준으로도 판매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구매자에게 리필이 가능한 유통 업체를 소개해주고 6만원이라는 1/5 가격으로 겨우 방출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후속 부품을 개발하여 교체나 튜닝이 가능하게끔 해주었더라면, Parker라는 브랜드 충성심이 올라가게 될 계기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5️⃣ 디자이너 관점에서 바라본 5th Ingenuity : 시각적 완성도는 훌륭해도...
Ingenuity는 대형 닙 형태의 후드, 정제된 금속 바디와 파카의 아이덴티티인 화살 클립 등. 시각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충분하게 만족스러웠습니다. 흔히들 Parker라고 하면 생각하게 되는 '올드' '빈티지'의 느낌은 전혀 없었으며, 필감도 확실히 부드러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펜의 본질은 '쓰는 경험'에 대한 것이며, 핵심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Ingenuity는 극단적 감성 과잉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펜을 구매하고 방출하는 과정에서. 방출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소는 고가의 소재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이상적인 필기 경험이었습니다. "저 펜을 방출하면 다시는 저 느낌을 경험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이 펜의 수명을 오래도록 유지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기구는 디자인만으로 오래 남지 않습니다. 혁신이란 '쓰다'라는 경험으로 충분히 증명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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